05 아버지의 행복한 진화, 프렌디

아버지 노릇 하기 정말 힘든 세상이다. 예전처럼 소리치고 호통친다고 고분고분 따르는 아이들이 아니다. 어떤 때는 달래야 하고, 어떤 때는 칭찬해야 하고, 또 어떨 때는 같이 놀아줘야 한다. 무표정한 얼굴의 무서운 아버지만 보고 자란 오늘날의 아버지들은 그래서 더 힘들다.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야 하나? 그 해답을 찾자면 먼저 아이들이 원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알아보는 게 순서다.

아이들이 원하는 이상형 아버지는?

2008년 여성정책연구원에서 진행한 ‘남성의 부성 경험과 갈등에 관한 연구’ 결과를 보면 이상적인 아버지 상에 대한 아이들과 아버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상적인 아버지의 조건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28.2%의 아버지들이 경제적 능력을 1순위로 꼽은 반면, 무려 59.8%의 아이들이 가정적이고 자상한 아버지, 친구 같은 아버지를 1순위로 꼽았다. 경제적 능력이라 대답한 아이는 불과 19.2%. 그야말로 동상이몽이다. 자녀가 아버지에게 바라는 모습과 아버지가 생각하는 이상적 모습에 이렇게 차이가 크니 갈등의 발생은 당연한 결과다. 그나마 이런 차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인 셈. 아이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해주며,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공감해주고 자기와 함께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아버지를 원한다. 관건은 친구 같은 아버지, 프렌디다.

사랑한다 표현하라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는 법, 그 첫 번째는 ‘표현’이다. 바로 사랑의 표현. “남자가 뭐 그런 걸 쑥스럽게 말로 하나요? 돈 벌어와서 입혀주고 먹여주고 공부 시켜주고, 이런 게 다 사랑이지,  말해야 하나요?” 흔히 듣게 되는 아버지들의 볼멘 소리다. 하지만 표현해야 한다.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건 이성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자녀에 대한 그것도 마찬가지다. 아내나 아이들은 결코 신이 아니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그들은 결코 내 속마음을 알 수가 없다.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늘 인정받고 사랑 받고 싶어한다. 아이들에게 아버지란 넘을 수 없는 큰 산이다. 아이들이 아버지로부터 받는 칭찬과 인정의 말에 목말라 하는 이유다. “아빠는 널 믿는다.”, “아빠는 널 사랑해.”, “힘내라, 너는 자랑스러운 아빠 아들(딸)이야.” 친구같은 아버지, 프렌디가 되려면 입에 항상 달고 다녀야 하는 말이다.


이러한 사랑의 언어들은 따뜻한 스킨십과 함께 할 때 그 효과가 배가된다. 가출 소녀의 90% 이상이 아버지와의 접촉 결핍을 겪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루에 네 번의 포옹이 필요하다.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루에 여덟 번의 포옹이 필요하다. 그리고 성장을 위해서는 열 두 번의 포옹이 필요하다.” 가족 치료의 선구자인 버지니아 스테어의 이야기다.


심장 이상으로 죽음을 목전에 두었던 한 신생아를, 인큐베이터에 같이 누워있던 쌍둥이 형이 포옹하자 살아났다는 이야기는 포옹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지 알려주는 사례다. 사랑을 전하고 생명을 살리는 포옹의 위대한 힘. 그래서 ‘허그 테라피’란 말도 있을 터. 진심 어린 사랑으로 가만히 내 아이를 껴안아 보자. 포옹할 때는 서로의 심장이 가장 가까워진다. 내 품 속에 안겨 숨 쉬고 있는 우주가 느껴진다. 서로 나누는 체온 속에서 마음의 소통이 일어난다.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사랑과 감사의 말들이 그렇게 전달된다. 포옹은 몸으로 나누는 가장 따뜻한 언어다.


아빠의 시간을 사고 싶은 아이들

야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아버지에게 아홉 살 먹은 아들이 다가와 얘기한다. 아빠의 시간당 봉급이 얼마나 되냐고 묻는 아들. 잠시 생각 후 한 2만원 정도 된다고 대답한 아빠에게 아이는 또 얘기한다. 그럼 아빠, 저 만원만 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피곤한 아버지는 욱해서 아이에게 소리친다. 회사에서 늦게까지 일하다 들어 온 아빠에게 보자마자 돈이나 달라 그러고, 넌 대체 언제쯤 철이 들 거냐며 화풀이를 하자 아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방으로 돌아간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너무 심했다는 생각에 아버지는 아이 방으로 간다. 아깐 아빠가 너무 피곤해서 화를 냈는데 미안하다며, 만원은 어디 쓸 거냐며 아이에게 돈을 건넨다. 표정이 밝아지는 아이. “아빠, 여기 지금까지 내가 모은 만원이랑 아빠가 주신 돈이랑 해서 이만 원이 있어요. 이거 아빠 드릴 테니까 내일은 일찍 오셔서 한 시간만 저랑 놀아주시면 안 돼요?” 아빠와의 한 시간이 너무나 간절해 그 시간을 사려고 한 푼 두 푼 돈을 모았던 아홉 살 아이의 슬픈 얘기다. 이게 혹시 내 아이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이 미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국 아버지들은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 어느 리서치 결과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동안 아이들과 영화 관람 등 문화 행사를 한 적이 있다는 아버지는 6%, 그나마 산책이나 운동을 했다는 아버지도 18%에 불과하다. 실로 서글픈 현실이다.


아이들은 금방 자란다. 아이들이 아빠를 필요로 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지금 하는 일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아이 옆에 오래 있어주겠노라는 다짐의 유효기간은, 그래서 얼마 되지 않는다. 아빠를 애타게 찾던 아이의 눈빛은 어느 새인가 친구와 엄마에게로 고정되어 있다. 아빠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다. “아빠는 내가 놀아달라고 할 때 항상 바쁘다고 했잖아요.” 나중에 아빠의 가슴에 대못을 박을 이 원망을 피하려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아이에게 아낌없이 쏟아야 한다.


자녀와의 놀이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고 사회의 규칙을 깨닫게 해주며 사회성을 개발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설렁설렁 성의 없는 놀아주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만 부른다. 짧은 시간이라도 진심으로 아이들과 공감하며 놀아주는 게 중요하다.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도 좋다. 아시아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인도의 시인이자 철학자 타고르는 아버지와의 여행을 통해 지식에 대한 열정, 종교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배려 등을 배웠다고 회고한 바 있다.


자녀와의 소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와 눈을 맞추며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고 아이들의 특별한 능력을 깨닫게 되는 그 시간들 속에서 정작 행복해지는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된다. 그렇게 켜켜이 쌓여가는 아이와의 추억들.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추억이 없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라는 말, 친구같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반드시 아로새겨야 할 이야기다.


행복하게 소통하라

청소년 사망 원인의 1위가 자살이란 통계자료가 있다. 충동적이고 즉흥적일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의 자살 이면에는 가족간의 대화 부족이란 슬픈 이유가 자리한다. 한 줌의 관심과 대화만 있었더라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비극인 셈이다. 대화를 통해 갈등과 문제의 대부분이 해결된다. 대화가 많은 가정이 행복한 이유다. 그러나 많은 아버지들이 자녀들과의 대화에 서툴다. 행복한 소통은커녕 대화 자체가 힘들다. 그럴 때는 나의 대화 내용을 찬찬히 뜯어볼 필요가 있다. 아버지로서 나의 바람만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완고하게 내 입장만을 고집하는 건 아닌지, 자녀의 얘기에도 공감을 표하며 귀 기울이는지.

행복한 소통을 위한 또 다른 요소는 정서적 친밀감이다. 따뜻한 신뢰가 없는 아버지와의 대화는 아이에게 스트레스이자 잔소리일 뿐이다. 아이와의 행복한 대화를 위해서는 평소에 충분한 친밀감이 쌓여야 한다. 부모의 가치관과 문화 등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도 문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하고 있는 게 세상이다. 세대 차이를 인정하고 명령, 지시, 경고, 위협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칭찬, 동정, 위로, 공감의 말을 건네야 한다.

적극적인 듣기 또한 중요하다. 아이가 느끼는 감정, 처한 상황에 대해 적절한 반응을 보일 때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더 깊은 속을 보여준다. 아이에게 맞장구를 쳐주어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해야 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원하는 것은 해결책 자체보다는 자신의 마음에 대한 공감과 이해다. 아이의 말을 단지 소리로 들어서는 안 된다. 숨어있는 마음의 소리를 캐치해야 한다. 아이에게 ‘아, 아빠가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너-전달법>이 아니라 <나-전달법>도 자녀와의 행복한 소통을 위한 좋은 도구다. 아이를 탓하고 아이에게 잘못이 있다고 몰아 세우는 <너-전달법>과 달리 <나-전달법>은 자녀의 행동에 대해 나의 느낌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내가 표현의 중심이 되어 그 느낌을 말하는 것일뿐 아이를 탓하는 게 아니다. 예컨대, 독서 중인 아빠가 시끄럽게 뛰어다니는 아이의 행동에 대해 “아빠가 책을 읽고 있는데 네가 이렇게 뛰어다니면 아빠가 정신이 없어서 책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어 힘들구나.”라고 표현하는 게 <나-전달법>이다. 일방적인 매도나 책망의 얘기가 아니기에 아이들도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보게 된다.

이상,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에 대해 살펴보았다. 프렌디, 행복한 아버지를 목표로 한 아름다운 진화다. 테레사 수녀가 노벨상을 받은 날, 한 기자가 물었다. 세계 평화를 위하여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기자 선생님께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셔서 가족을 사랑하는 게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아버지가 변해야 가정이 행복해진다. 나는 대한민국 아버지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www.innomango.com)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학교(HSE) MBA를 마쳤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경영직무·리더십 교육회사 휴넷의 마케팅 이사(CMO)로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 일탈>,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 <사장을 위한 노자>,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유튜브 채널 <방구석 5분혁신>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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