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아버지가 사라지고 있다!

어느 평범한 대한민국 가정의 한 장면. 몸이 으슬으슬한 게 몸살이라도 난 듯 하여 큰 맘 먹고 회사에서 조퇴를하고 집에 돌아 온 한 아버지. 부인은 친구 모임에라도 나갔는지 집엔 아무도 없다. 그는 감기몸살약을 찾아 먹고는 거실 소파에 누웠다. 그러기를 한시간 여. 학교를 마친 중학생 아들이 열쇠로 문을 열고서는 집에 들어선다. 엄마 엄마, 하고 몇 번 불러보더니 인기척이 없자 소파에 누워있 는아빠는 본 체 만 체 집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한마디 한다. “어, 아무도없네.”

▶아버지가 사라졌다!

결코 웃을 수 만은 없는, 이 서글픈 유머는 오늘날 가정 내 ‘아버지의 부재’를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의 부재’는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아버지가 집에 없거나 가족 행사에 함께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이고, 또 하나는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아버지는 힘들다. 각종 통계 자료를 보면 과로와 사망률 등에서 대한민국의 40, 50대는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과 글로벌 경제 위기 등으로 인한 구조조정의 칼날 등 대한민국 아버지들이 처한 현실 자체가 녹록하지 않은 탓일 게다. 그러나 이런 슬픈 현실은 비단 직장이나 사회에서의 문제 만이 아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날로 급증하는 이혼율이나 자녀와의 대화 단절에 의한 외로움은 대한민국 아버지들을 괴롭히는 또 다른 복병이다.

보다 구체적인 사례 하나. 모 기업에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족과 함께 하는 즐거운 하루”라는 주제로 그림 공모전을 열었다. 그러나 출품된 대부분의 그림에서 아버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아버지는 소파에 누워 혼자 TV를 보고 있거나 술에 취해 자고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아버지와 가족들의 서글픈 동상이몽(同床異夢)


대한민국 아버지 그룹이 방황하고 있다. 그들은 혼란스러워 한다. 과거의 것은 사라졌으나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을 때 그때가 위기다, 라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지금의 아버지들은 위기의 한 가운데에 던져져 있다. 가족과 가정을 위해 지금까지 참으로 ‘열심히’ 살아온 우리의 아버지. 그러나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법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 ‘열심히’와 ‘행복하게’의 가치 전환의 시점에서 아버지들이 갈 길을 못 찾는 것이다. 급속도로 성장하던 산업 발전 시대의 경제 역군이었던 전 세대의 아버지들을 통해, 가정을 위해 몸이 부셔져라 ‘일’하고 ‘희생’하는 모습만이 아버지의 전형적인 상(像)으로 남은 결과이다.

이런 아버지와 아이들은 서글픈 동상이몽을 꾸고 있다. 2006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조사에서 “자녀가 고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와 의논한다”라는 항목에 50.8%의 아버지가 그렇다고 한 반면, 자녀들은 고작 4%만이 그렇다고 응답하였다. 아이들은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아빠와 대화가 없어진 지 꽤 된 것 같아요. 아빠랑 얘기하면 맨날 공부해라, 라는 말 밖에 안 해요. 그러다 보니 자꾸 피하게 되죠.” 항상 강압적으로 지시하고 명령하는 아버지에 대한 심리적 거부가 아버지에 대한 회피나 거짓말로 나타난다. 또 다른 조사 결과들. 미국 링컨 대학교 학생 5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68%의 학생들이 TV와 아버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면 TV를 고르겠다고 응답했다. 이 뿐 아니다. 여대생 중 아버지를 닮은 배우자와 결혼하겠다고 대답한 사람이 17.9%에 불과하고 아버지와 닮은 배우자와 결혼하기 싫다고 응답한 사람은 65.4%에 달하는 조사 결과도 있다.

아버지에 대한 불만은 자녀들뿐만 아니라 아내들도 마찬가지다. 아내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자기는 돈만 벌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집에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죠. 게다가 집안 일에 대한 내 수고는 인정하려 들지를 않아요. 그렇다고 아이들과 잘 놀아주기라도 하나요? 매일 술 먹고 늦게 들어오고 그나마 주말에는 피곤하다며 소파에 누워 리모컨만 만지작거리는 게 일이죠.” 다시 결혼한다면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겠다고 대답하는 대부분의 남자들과는 달리 다른 사람과 결혼하겠다라는 문항에 여자들은 무려 70% 이상의 높은 응답률을 보이는 이유다.

▶신 모계사회(新 母系社會)의 도래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이다. 이 쪽을 봐도, 저 쪽을 봐도 내 편은 없고 적군의 노래만 들려온다. 한 때 대한민국 경제활동의 주역이자 가정의 주춧돌이었던 한국의 아버지들은 도대체 왜 이런 위기를 맞게 된 것일까? 왜 이 땅의 아버지들은 가족들의 공적이 되었고 기피 대상이 되었으며, 가정 내 부재의 상징이 된 것일까?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개인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가부장적 가족 문화는 해체되고 효(孝) 사상은 점차 희석되어 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속에서 전통적으로 인정되던 가장, 즉 아버지의 권위는 사라지고 가족 개개인의 독립적 생활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명령하고 지시하는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반대로 가사와 양육을 비롯하여 가정 경제를 포함한 생활 대소사를 챙기던 어머니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소위 신 모계사회(新 母系社會)가 도래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드림 소사이어티>의 저자, 롤프 옌센은 “미래의 가족 구조는 가족 개개인의 독립 생활이 강화되면서, 가족들은 가장을 중심으로 뭉치기보다는 서로의 파트너 개념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가정행복경영의 시작-왜곡된 남성성의 문화

이런 사회 문화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버지들에게 이 시대는 좌절과 혼돈의 시대다. 그 질곡에서 빠져 나오려면 아버지도 바뀌어야 한다. ‘잘못된 남성다움’과 ‘잘못된 남성 문화’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버려야 한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혼 남성의 89%가 스스로 남성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고 얘기한다. 예컨대, 남성은 강해야 한다, 남성은 울지 않아야 한다, 같은 기존 유교 사상 속에서의 왜곡된 남성성이 바로 그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빗나간 남성 문화도 개혁의 대상이다. 가정보다는 바깥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 내 가족들보다는 남들에게 우선적으로 잘해야 된다는 체면 중시 문화, 술이 없으면 대화를 할 수 없고 남자라면 술이 강해야 한다는 삐뚤어진 음주 문화, 가족들과 함께 건전하고 건강한 여가를 즐기지 못하는 잘못된 레저 문화, 그리고 아직도 여기저기 남아있는 가정 내 폭력 문화. 이 모든 게 내다 버려야 할, 청산과 개혁의 대상이다.

이제 시작이다. ‘가정행복경영’의 새로운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내 모습은 완전히 벗어 던져 버리고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생각 하나만으로 새 출발해야 한다. 가정 내에서, 그리고 가족 내에서 사라져 버린 '왕따아버지'가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소통하고 대화하고 마음을 나누는 행복한 아버지로 거듭 나야 한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스스로 행복한 아버지가 되는 방법? 바로 ‘가정행복경영’이다. 내가 변해야 가정이 행복해 진다. 나는 대한민국 아버지다. ⓒ혁신가이드안병민


*글쓴이 안병민 대표(www.innomango.com)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학교(HSE) MBA를 마쳤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경영직무·리더십 교육회사 휴넷의 마케팅 이사(CMO)로서 ‘고객행복경영’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 일탈>, <그래서 캐주얼>, <숨은 혁신 찾기>, <사장을 위한 노자>,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유튜브 채널 <방구석 5분혁신>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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